자작 글

축문

채운산 2006. 7. 9. 23:35

 

 

                              축문

 

 

어머니!
오늘은 어머니의 5주년을 맞는 제삽니다
생전에 그 좋아하시던 나물국을 끓이겠습니다
맛있는 콩밥에 영양 떡과 달래장도 놓겠습니다

 

동생이 혼자 시장에 간다해 달래 사란 부탁은 안 했습니다
콩 섞어 진메 올리려 한 계획이 틀렸습니다
제상엔 파 마늘 안 쓴다지만
달래 장에 조금은 비벼 잡수시라고 하렸더니...

 

마차실 사랑방에 누어 계실 때
입 맛 떨어져 못 잡수시면
제가 쓱싹쓱싹 나물 캐어 끓여들이면
어~ 잘 먹었다!
그 생각이 나서 누가 뭐래도 좋아하시던 걸로 놓겠습니다
고향의 텃밭에서 뜯어먹던 맛이 날지 모르겠습니다

 

옛날엔 고기가 아주 귀한 것이라 썼겠지만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답니다
장 제가 바뀌어 화장터로 향하는 영구차들이 많은가 하면
몇 년 전부터는 납골당이란 말이 오가더니
작년부터는 수목 장이란 말까지 생겨서
앞으로 얼마동안은 유행하게 생겼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시신 기증자도 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변한 세상에 옛 제상만 고집할 수는 없습니다
요번 제사엔 태인이는 학교의 중요한 모임으로 불참입니다
어제 태석이가 재판하고 왔는데 좋은 결과를 맺지 못하고  
그 놈이 거짓 서류를 꾸며내서 이 다음 16일에 또 가야 됩니다

 

바라시던 이혼은 재작년에 했습니다만 또 미원이 한 테 얽혀
재판 때문에 하루 한 날 맘 편히 못 지내고 온갖 고생 다 합니다
어머니 살아 계시면 주님께 간절히 기도 드리시겠지요?
태석이 앞날이 확 풀리게 좀 도와주세요

 

문규는 아주대 1학년으로 기숙사에 들어갔습니다
애지중지 키우시던 문규가 어미 잘 못 만나
마음에 상처를 안고 고생하는 것도 장차엔 득이 될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젊었을 때 고생은 돈주고도 산다지 않습니까?

 

어머니 그 지긋지긋한 병마는 이제 다 떨어졌지요?
무한한 명복을 빕니다
        
                                           딸 태숙 올립니다
                                                           2006년 ○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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