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글

여름 밤

채운산 2015. 12. 29. 13:34

여름 밤

할아버지는 낮에는 동네 남자들이 모이는

밤나무 밭 원두막으로 가신다

밤나무 밭 한쪽에 참외를 심어서 원두막을 지었다

원두막 밑에서 밀대방석 틀을 놓고

키가 훤칠하고 깨끗한 호밀 대와

웃음과 이야기를 섞어 엮으신 밀대방석을

저녁때가 되면 마당에 깔고

한쪽에 모닥불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

온 식구들 모여앉아 저녁 식사를 하고

아이들은 바가지 들고 공동 우물에서

찬물을 끼얹으며 시끌벅적 목욕을 하고

반짝이는 하늘 보며 저것은 북두칠성

저것은 은하수 하다 별똥별도 보면서

한바탕 밀대방석에서 뒹굴고 놀 때

반짝반짝 날아다니는 반딧불을 보고

신이 나서 쫓아가 잡아가지고

얼굴 몇 군데 붙이고 좋아하며

하하하 하하하

동무들과 만나서 서로 내 얼굴 봐라!

 

반딧불을 부칠 곳보다 적게 잡으면

반딧불을 쪼개면 늘어난다

쪼개서 붙이기도 하였다

 

198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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