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올가미 속에2년형을 언도 받고
후꾸오까(福岡) 형무소에서
독립 운동가라고
푸른 죄수복을 입은 20대 한국 청년들이
500여명이 계속된 식염수 주사를 맞으려고
시약실(施藥室) 앞에 쭉 늘어섰다
피골이 상접한 청년들은 묻는 말에
저 놈들이 주사 맞으라고 해서 맞았더니
이 모양이 되었다는 소리조차 흐려졌다고
송몽규는 말하고 뒤에 사망했다
윤동주도 이 모양으로......
소리 밖에 못했다니
죽은 지 열흘이 지난 뒤에 부친 윤영석과
족숙 윤영춘이 형무소를 방문했다
관 뚜껑을 열었을 때 시신은 원형 그대로였다
큐우슈우 제대(九州 帝大)에서 방부처리 했기 때문에
임종시 뜻을 알 수 없는 격렬한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고
담당 간수가 동정을 표시했다
시체도 안 준 일본 놈들은 생체 실험의 대상으로
톱질하고 칼질하며 잔인한 실험을 했는데
윤동주도 일본인 유학생이 동국대학에서
제출한 논문에 상세히 기록이 있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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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데 주어진 길을
걸어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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