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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하운 : 시 <전라도길>

채운산 2007. 6. 29. 16:39
 <전라도길>

【시 전문】- 한하운

                    - 소록도(小鹿島)로 가는 길 -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天安)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西山)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 [신천지](1949. 4) -

【해설】

   6ㆍ25 동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949년 [신천지] 4월호에 발표된 12편의 작품 중의 하나로서 이 시의 부제(副題)는 '소록도로 가는 길'이다.

   전라남도 고흥군에 속해 있는 나병 환자들의 요양원이 있는 소록도는 성한 사람들로부터 유리(遊離)된 하나의 유형지였다. 1949년 5월에 첫 시집 <한하운 시초(韓何雲詩抄)>가 정음사에서 발간되었는데 그가 나병 환자라는 사실 때문에 충격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개관】

▶성격 : 애상적

▶특징 : 끝없는 천형의 길을 걸으며 애수와 절망의 극한을 사실적으로 그림.

▶제재 : 소록도로 가는 길

▶주제 : 나병 환자들의 유랑과 고독 / 인간 세계에서 소외된 자의 고독과 유랑

【구성】

① 제1연 : 숨막히는 더위 속에 걷는 황톳길

② 제2연 : 문둥이끼리 만나면 반가워함.

③ 제3∼4연 : 더위 속, 절름거리며 걷는 황톳길

④ 제5연 : 발가락이 또 한 개 떨어져나감.

⑤ 제6연 : 멀기만 한 소록도 가는 길

【감상】

   '소록도 가는 길'이라는 부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나환자 수용소를 찾아가는 문둥병 환자의 고달픈 역정이 그려져 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 숨막히는 더위뿐'이라는 구절과 '가도 가도 천리'라는 구절에서, '천리 길'이란 실제가 그렇기도 하겠지만 천형(天刑)의 길을 걷는 문둥이의 희망 없는 막막함을 느끼게 된다.

   그 아득하고 막막함 속에서 어쩌다 '낯선 친구 만나면 /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고 화자는 진술한다. 이 진술 속에는 몸이 성한 세상 사람 모두에게서 버림받은 이의 설움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미덕이 있다. '지까다비를 벗으면 /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는 구절은 읽는 이에겐 몸서리쳐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화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사실만을 말하는 데 그친다. 서럽다든지 어쨌다든지 하는 감정을 일체 드러내지 않고,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천형(天刑)의 길을 걷는 시인의 냉엄한 현실 인식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하운은 나병의 병고(病苦)에서 오는 저주와 비통(悲痛)을 온몸으로 껴안고 살다간 천형(天刑)의 시인이다. 부제 <소록도로 가는 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전라남도 고흥군 소록도의 수용소를 찾아가는 나병 환자인 화자의 고달픈 삶을 잘 나타내고 있다. 천형이라는 운명적 삶을 살아가는 그의 무거운 발걸음은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 숨막히는 더위뿐'이라는 첫 구절과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이라는 마지막 구절에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천리'는 고향 함경남도 함주에서 전라도 소록도까지의 공간적 거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화자의 절망적 삶의 모습이자, 평상인들과 결코 동화할 수 없는 정신적․육체적 거리감 즉, 삶의 거리감을 뜻하기도 한다.

   그 아득하고 막막한 여행 길에서 어쩌다 '낯선 친구 만나면 /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가운' 화자는 그들에게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깊은 동류애(同類愛)를 느낀다. 버림받은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의 설움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이 미덕 뒤에는 '절름거리며 / 가는' 고통이 있으며,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 슬픔이 자리한다.

   그러므로 간신히 천안에 당도해도 여름해는 여전히 거친 수세미 같은 무더위를 내뿜고 있을 뿐이며,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느 버드나무 아래에 주저앉아 '신을 벗으면 /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진 사실을 발견해도 화자는 놀라거나 어떠한 감정 표현도 하지 않는다. 도리어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계속 갈 수밖에 없다고 담담하게 말함으로써 화자가 지닌 냉엄한 현실 인식과 '소록도'로 표상된 안식처를 간구하는 화자의 비극적 모습이 잘 투영되어 있다.

☞【한하운의 문학인생】

   소록도로 간다. 반도의 남쪽 끄트머리 고흥반도를 지나 녹동항까지, 다시 그곳에서 지척에 떠 있는 아름다운 섬 소록도로 들어갈 것이다. 장마전선이 제주도에 도착했다는 라디오 일기예보다. 서울에서 순천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는 햇빛과 비가 교차하는 불순한 일기의 터널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남도길, 황토 길을 한하운(본명 泰英, 1919∼1975)은 울면서 갔다. 인간사의 거리가 그리워 ‘보리피리 피-ㄹ니리’ 불며 서럽게 걸었다.

   나병을 짊어지고 인간들에게서 추방돼 살아 있긴 하되 살아 있는 목숨이 아니었던 오욕 칠정(五慾七情)으로 또 다른 고통 속에 흘러가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의 거리일망정, 그리웠다. 자고 일어나면 손가락 하나 없어지고, 또 자고 일어나면 발가락 하나 없어지는 서러운 남도행 천리 길을 시인은 걸었다.

   한하운은 함경남도 함주에서 그 지방 명문가의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뛰어난 머리와 예체능 쪽의 소질이 돋보였던 그는 보통학교를 마치고 부친의 뜻을 좇아 이리 농림학교로 유학을 온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나고 유난히 감성이 풍부했던 그는 고향 여학생과 더불어 로맨틱한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5학년 때 청천벽력 같은 ‘꽃소식’에 접한다.

   온몸에 부스럼이 나기 시작하고 살이 썩어 들어가는 증세를 발견한 것이다. 병원에서는 그에게 비극적인 운명의 시작을 알린다. 사랑하는 여인은 헌신적으로 그의 상처를 닦아주고 갖은 고생을 마다 않고 약을 구해다 주지만, 그의 병세는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다 끝내 걷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간다. 그에게 온갖 정성을 기울이던 어머니마저 숨을 거두었지만 맏상주인 그는 문상객들 때문에 바깥에 나가지도 못한 채 골방에서 숨죽여 울었다. 해방 후 38선이 갈라지고 소련군이 진주한 상황에서 그는 약을 구하기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월남한다. 헌신적으로 그를 보살피던 배꽃 같은 여인과도 이별이었다.


  한번도 웃어본 일이 없다

  한번도 울어본 일이 없다


  웃음도 울음도 아닌 슬픔

  그러한 슬픔에 굳어버린 나의 얼굴.


  도대체 웃음이란 얼마나

  가볍게 스쳐가는 시장끼냐.


  도대체 울음이란 얼마나 짖궂게 왔다가는 포만증이냐. 

     (중략)

  오늘 꼭 가야 할 아무데도 없는 낯선 이 길머리에

  쩔룸쩔룸 다섯자보다 좀더 큰 키로 나는 섰다.

   (중략)

  지나는 거리마다 쇼윈도 유리창마다

  얼른 얼른 내가 나를 알아볼 수 없는 나의 얼굴.

                                 - 한하운의 <자화상> 중에서> -


   지금은 약도 많고 초기에 치료만 하면 완치되는 게 이른바 ‘한센병’이지만 예전에는 나라 전체가 가난하고 힘들어서 나환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떼를 지어 거리를 방황하고 구걸 행각으로 연명해야만 했다.

   그들이 가족과 인간사와 격리돼 한 많은 삶을 살아야 했던 곳이 이곳 소록도. 병원 직원들 거주 지역과 환자 거주 지역으로 분리된 섬 전체를 국립 소록도병원의 협조를 얻어 일주한다. 한때 6천명까지 수용됐던 이곳에 지금은 평균 연령 69세의 노령 환자들 1천여 명만 남아 있어 폐쇄된 마을이 많다. 생활 능력이 있는 환자들은 전국 96개 정착촌에서 정상인들 못지않게 행복하게 살아간다. 환자들의 마을 위편 도로로 새소리를 음악 삼아 천천히 달리는데 멀리 흡사 이슬람 사원을 연상시키는 돔 형태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죽어 간 사람들을 화장시켜 유골을 보관하는 「만령당(萬靈堂)」이다. 한하운은 이곳 병원에 입원한 적은 없지만 약을 구하기 위해 몇 차례 다녀간 기록을 남겼다.

   한하운은 1949년 당시 카프 계열의 시인이었던 이병철의 추천으로 「신천지」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일찍이 한국 현대시에서 지극한 고통의 상징어로 등장한 나환자는 김동리가 <바위>에서, 미당(未堂) 서정주가 <화사집> 시대에 발표한 시들에서 중요한 시적 소재로 처음 등장한다. 그 소재가 이제 한센병에 걸린 당사자에 의해 새로운 차원에서 시로 승화되는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

   명동성당 방공호에서 시편을 정리해 세상에 첫선을 보인 <한하운 시초(詩抄)>(1949)는 그 뒷세대의 기라성 같은 시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잘 알려진 일화지만 시인 고은(高銀)은 중학교 시절 길거리에서 <한하운시초>를 주워 읽은 뒤 운명적으로 시인이 되기를 결심했다. 뒷날 신경림(申庚林)의 시편에서, 그리고 김지하(金芝河)의 시편에서도 한하운의 자취는 발견된다. 문학평론가 최원식(崔元植)씨는 말한다.

   “한하운의 시는 나병환자에 대한 외재적인 시선을 바꾸어 놓았고 고통에 짓눌린 그들의 눈으로 본 세상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우리 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이다.”

  “정상적인 엘리트였다가 일종의 민중적 체험을 하는 추락의 과정에서 토해 낸 시편들에는 병든 이의 내적 고통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에 대한 정치적 함의(含意)도 발견돼 매우 흥미롭다”


출처 : 김영관의 국어방
글쓴이 : 재봉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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