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글

당신의 마지막

채운산 2015. 12. 23. 16:42

당신의 마지막

 

당신의 마지막 모든 것들

당신의 마지막 하신 말씀

당신의 마지막 하신 일들

평상시 유언처럼 하신 말씀

모든 것들이 눈에 선하고

귀에 들립니다

마지막 가시는 순간까지도

자식을 걱정하시느라

덜 바쁠 때 가신다고 계획하신 일

그래서 단식하시며 그렇게 가셨습니다

아들이 모범 공무원상을 타는 것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니

상장을 어머니 방에 붙여두고 보셨습니다

봄 방학 때 가시려고 예정하신 일

외손녀 시집가기 전에 가셔야 한다고

고향에 과부가 딸네 집에 사는데

욕창을 앓다 외손녀 내일 시집가려고

음식 장만해 놓은 걸 그날 죽어

그날 장사 치르고

예식장에는 부정 탄다고 신부 부모는 못 들어갔다 하시기에

혼인 때 돌아가시면 두 집에서 일 치르면 되지 않느냐고 여쭈니까

흐흠! 말썽 사나워 못 써!”

하시더니 한 달을 앞두고 가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외손녀 옷 사 입으라고 주신 돈으로

표 나는 옷을 샀답니다

초상났을 대 제일 많이 운 사람은

어려서부터 키우시던 손자와 외손녀 슬피 울었습니다

손자는 이 귀퉁이 가 숨어서 울고

저 귀퉁이 가 숨어서 울었습니다

외손녀는 염할 때 도착해서

할머니의 얼굴을 뵈었습니다

한다는 소리가

어제 올 걸! 손 한 번도 못 잡아 보겠네!”

하며 울었습니다

아마 어제 와도 영안실에 계실 텐데요

그러니까 지난 토요일에 외손서감과 온다는 걸

추한 꼴 안보이시려고 못 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염하는 날 눈 뜬 까닭은 무엇입니까?

다시 살아나신 겁니까?

상주 한 명만 염 실에 오라해서

다른 사람은 모두 옆 실에서

유리창으로 볼 수밖에 없더군요!

저와 손수 지으신 수의를 입으시고

입관하신 뒤에 십(+)자가 보로 덮었습니다

 

 

그렇게도 사고(死苦)를 겪으시더니

드디어 세상을 하직하셨습니다

체구는 조그만 하신데 질긴 명줄만 타셔서

고로롱팔십을 채우셨습니다

몇 년을 누어서 와창이 나서 가을부터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치료했어도

낫는 듯 또 커지고 다른 데 또 나고

얼마나 고통이 심하셨습니까?

막 쓰리고 아프다고는 하셨지만

앙상한 뼈에 가죽으로 덮인 몸속에

무슨 전기가 번쩍번쩍 와서 심줄이 땅겨

다리가 오그라지고 그때마다 소리 지르시며

사방을 푹푹 쑤시고 돌아다니면

한 쪽 다리 펴 달라 하시면 잡아당겨 들였지요

금방 놓았던 다리가 또 오그라집니다

오른쪽 한번 왼쪽 한번 번갈아 가며

쉴 새 없이 잡아당겨 드리고

옆으로 바꿔 누우실 때도

가만히 한 손으로 볼기를 드는 듯

돌려 다른 한 쪽 볼기는 주사를 하도 맞아

멍울이 들어서 피하고

다리도 아무 데나 잡지 말고

복상 씨께만 붙잡고 잡아당겨서 돌리고

다리가 빠져도 상관없으니 막 잡아당겨라

빠지면 집어 내버리지 그나저나 아픈 다리

이 이이 그렇게!”

베개 밑으로 머리가 내려올 때까지

잡아당겨도 손 놓으면 금방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온 몸에 누구의 손이 닿을까봐

이 근방 오지 마 손다면 큰일 나니까!”

하셔서 누가 어머니 몸에 손을 댈 수 없으니

아무리 깔끔하셔도 씻길 수 없었습니다

돌아가실 무렵 약간 신경이 둔해지셔서 손 댈 수 있어

돌아가시던 날은 새벽에 제가

어머니의 각질을 노송 버굿 벗기듯 벗기고

찐득이로 찍어냈습니다

나 죽걸랑 제일 먼저 물 먹여라

하셨는데 깜빡 잊고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유언이셨는데

죽을 때는 똥 싸는 것이다

하시며 수건도 깔고 천도 깔고 하셨는데

그런 일 없이 깨끗하게 가셨습니다

새벽에는 난데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벌떡 일어나 너를 꼭 잡고 안고 싶다

하시기에

저는 허리가 아파서 그렇게 못해드리고

날이 새면 애들 시켜서 해드릴께요

오후에는 손자를 시켜 해 드리려고 뵈오니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이것도 실천을 못했으니 불효녀입니다

한쪽 궁둥이는 주사를 하도 많이 맞아 쏙 들어가고

한쪽 멍울 든 곳은 더 나왔습니다

이래서 앉을 수도 없으실 텐데

아마 가실 때가 되어 그런 말씀 하신 것 같습니다

 

 

추수도 대충 마치고 친정에서 살다시피 간호했지만

한번 왔다 다시 뵈면

이렇게 아프긴 처음이다

하직할 때마다 남는 귀에 것은

어머니의 고통 받으시는 신음 소리

차마 자식으로써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가실 무렵엔 정말 더 하셨습니다

양쪽 발이 통통 부어터질 것 같습니다

진통제를 하루에 두 번 세 번 놓아도

신음 소리는 더 클 때는

만일 제가 의사라면 안락사라도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어머니의 바라시는 것은 얼른 가시기를 바라셨습니다

숨을 거두신 뒤로는 불러도 대답도 없으시고

체온은 남아서 따뜻한데

차마 돌아가셨단 말하기도 뭣한데

안 할 수가 없어서 동생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금방 나갔던 동생이 들어왔습니다

한복을 입히고 수세를 걷고

홑이불을 덮어 드렸습니다

옷 입힐 때도 벌써 몸이 차집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는 길인데

그만한 고통을 겪으셨습니까?

임종 예배드리고 장례식장에 모실 때는

영정을 벽 중간에 걸어놓아

천당 가시는 길 같이 보였습니다

녹음기에서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와

찬송 소리가 그치지 않고 나서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드리는 것 같았습니다

선영으로 가시게 되면 고향 사람들 귀찮게 한다고

화장하라고 하셨지요

성령이 역사 하셔서 조용히 장례를 마쳤습니다

어머니께서 보시던 성경과 찬송, 제 구약은

발인 예배 드린다고 어서 오라며

저는 돈 가방과 짐을 챙기고 있는데

규 어미가 빼앗아 갔습니다

집에 와보니 이 층에 있어 큰애한테 물어보니

외숙모가 줬는데 깜빡 잊고 안 내놓고 왔답니다

그래서 책꽂이에 뒀습니다

 

2000. 2. 20 사망 (20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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