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내다리가 생기게 된 동기로 부여 박물관에 소장된 은진미교비의 비문에 따르면 조선조 영조 7년(1731년) 강경사람 송만운이 주도하여 황산사람 유부업, 중경원, 설우, 청원 3인과 여산의 강명달, 강지평이 재물을 모아 1년만에 전라도와 충청도를 잇는 이 다리를 축조 했는데, 당시는 3남 제일의 대교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펌]
미내다리가 생기게 된 동기로 부여 박물관에 소장된 은진미교비의 비문에 따르면 조선조 영조 7년(1731년) 강경사람 송만운이 주도하여 황산사람 유부업, 중경원, 설우, 청원 3인과 여산의 강명달, 강지평이 재물을 모아 1년만에 전라도와 충청도를 잇는 이 다리를 축조 했는데, 당시는 3남 제일의 대교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