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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밖에 잠 못자
신 정환덕은 매일 정오 반드시 예궐하여 허리를 굽히고 고종황제와 황태자에게 문안을 올린다. 하루라도 이 시간에 늦으면 불호령을 내리곤 하였다.
"그때 그때 국내외 정세를 아는 것이 더욱 급하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지체치 말고 그 정확한 진상을 짐에게 알리라. 갑신정변(1884)이후 과인은 태자와 함께 매일 3시간 정도 밖에는 잠을 자지 못하였노라. 중전(명성황후)이 불의에 일본도적에게 변고를 당한후에는 더욱 긴장하고 분을 금치못해 편안한 잠을 이루지 못하였노라. "
폐하께서는 눈물까지 흘리셨다. 이때 옆에 있던 황태자도 함께 근심하고 계심이 매우 애처롭게 보였다. 저녁 식사후에 다시 문안을 올리면서 국제정세를 상세히 아뢰었다. 대청(대청) 한 모퉁이에서 황태자전하를 모시고 궁중내 동-서 전각을 거닐며 바람을 쏘였다. 황태자 역시 고종황제 못지 않게 나라 안팎의 사정을 궁금히 여기셨다.
안중근의 의거가 있은뒤, 한번은 폐하께서 "안중근이 그처럼 의기가 당당하더냐. 그 모습이 어떠했는가"고 하문했다. 그의 위풍당당함을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안중근은 이등박문후작을 죽인뒤 조용히 포박을 당한바 사색이 불변했습니다. 대장부가 죽는다면 죽는 것이지 시시하게 문초를 받겠는가라고 말했다고 들었습니다. "
폐하께서는 매우 감동한듯 "그 얼마나 아까운 인물인가. 참으로 기특하고도 갸륵한 위업이 아닐 수 없도다"하시며 낙루하였다. 고종황제와 동궁은 외국사절과 자주만났으나 서양춤이 벌어지면 은근히 측소(변소)에 볼일이 있다 하시면서 그 자리를 비우곤했다. 서양춤이 늘 보기 싫다고 말씀하시곤했다.
외국사절 자주 만나
그러나 그들과의 외교문제를 처리할 때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들을 쏘아보곤해서, 미국인 헐버트는 "고종황제는 단구이나 담력과 판단력이 뛰어나다"고 중얼거렸던 일이 있다.
폐하께서는 정오에 점심을 드신후 1시간 가량 주무신뒤 다시 정사를 보시고 대개 저녁 9시쯤 지밀(지밀 임금의 거소)에 드신다. 자리끼는 보통 새벽녘에 드시고 식혜를 즐기셨다. 고종은 소식을 원칙으로 하나 반찬은 12가지 이상을 놓아드려야 만족해 하셨다. 넓은 수라상에는 주로 해물 5가지씩을 위주로 준비해 올리는데, 신이 먼저 맛을 본다. 황제폐하의 건강을 염려해서이다. 붉은 콩밥을 즐기셨고 식후에는 반드시 과일을 드시는것을 습관으로 했다. 과일은 사과 배 대추 등을 즐겨 잡수셨다.
역사책 열심히 읽어
고종은 동쪽 온돌방에 앉아 고금의 우리나라 역사책을 열심히 읽고 깊은 내용을 알고 계신듯 고개를 끄덕이시곤 했다. 또한 김유신 을지문덕 계백 최영 이순신 세종대왕의 충열-공훈을 늘 생각하시었고 그 전기(전기)를 즐겨 읽으셨다. 어떤 날은 조선왕조실록을 몇권씩 진지 잡수시는 것도 잊고 다 읽어내려간 적도 있다. 그러면서 신에게 묻는다.
"지금의 국제정세는 약육강식하는 법칙이 가장 잘 들어맞는것 같소. 잘못 정신을 차리면 우리가 일본이나 아라사(러시아)에 먹힐지도 모르겠소. 국민들이 제나라를 아끼는 올바른 자세를 갖게하려면 먼저 웃사람부터 주체적인 사상을 가져야 되는게 아니겠소. " 동궁전하 역시 총명하심이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세상에서는 그렇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 안타깝기 그지 없다. <발췌-번역=성신여대 이현희교수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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