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도 참, 저 호박 좀 잘라 죽 쑤어 먹자니깐. 호박이 그렇게 아까워? 왜? 그 속에 흥부네 박처럼 금은보화라도 들어 있을까봐? 그래서 나 없을 때 잘라 보려고? 나 왔을 때 잘라서 나 좀 나누어 주면 좀 좋아?"
보름 전에 스카프 사들고 커피 마시러 왔다가 호박을 본 동생은 썩기 전에 어서 요리를 해 먹자고 졸랐지만 그냥 빙긋이 웃고 돌려 보냈습니다. 뚝 잘라 반절만 줄 것이지, 제가 너무 욕심이 많다고요? 그럴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냥 늙은 호박 하나가 집에 있으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따뜻해집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그래서 짐짓 호박이 이미 썩어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하면서 먹기를 아까워하며 그냥 둔 적도 있습니다.
그러던 어제, 결국 호박을 잘라서 맛난 요리를 해 먹었습니다. 이젠 늙은 호박 몇 덩이 다시 사다 두어야겠지요? 첫눈이 오기 전에, 좌판에서 사라지기 전에요. 제가 사는 곳은 가까이에 농사짓는 사람들이 많아서 지금 길가마다 호박을 쌓아두고 파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여름이면 호박잎, 꾸부정한 오이와 가지, 고추 등을 팔기도 합니다. 덕분에 밭에서 직접 따온 것을 살 수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늙은 호박 한 덩이를 갈라 기껏 할 수 있는 것이란게 호박죽이 고작이었습니다. 가끔 신김치로 끓이는 찌개에 뚝뚝 잘라 넣어 끓여 그 시원한 맛을 즐기곤 했지만 그래도 큰 호박 하나는 가족 모두 먹기에 양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늙은 호박이야기만 나오면 눈여겨 보았는데 생각보다 해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求?
흔히 해먹는 호박떡과 호박죽 외에도 호박부침개와 호박밥, 호박잼, 호박샐러드, 호박김치, 칼국수나 수제비, 호박식혜, 호박고추장, 호박경단, 호박크로켓, 호박양갱…. 남은 호박을 랩으로 싸서 두면 한동안은 요긴하게 이것저것 해먹을 수 있다는 군요. 그리고 호박씨를 살짝 볶아 야금야금 까먹는 맛이란….
▲ 눈길이 머무는 곳에 늙은호박 한 덩이 놓여 있으면 마음이 참 넉넉해집니다. 호박은 뿌리까지 모두 쓰인다는군요.
ⓒ 김현자
늙은 호박의 변신 어디까지 - 늙은호박 부침개
일요일인데도 쉬지 못하고 출근한 남편에게 전화해 "들어오는 길에 막걸리 한 병 사오라"고 말했습니다. 둘째와 함께 주방 한편에 한 달 반 동안 넉넉하게 놓여 있던 호박을 잘랐습니다.
"엄마. 이 속에서 무엇이 나와? 목걸이 같은 것도 나올까?" "엉? 왜? 그런데 그런 것이 왜 호박 속에서 나오는데?" "엄마는 참, 흥부네 좀 보라고. 부자 됐다는데…. 그런데 호박으로 마차를 만들어 탈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네." "엉? 그건 또 무슨 말이니?"
끝도 없이 조잘조잘대는 아이와 함께 호박 속을 갈랐는데 아이는 궁금해 하던 목걸이는 나오지 않았지만 호박 속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보고 감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금방 슬픈 표정으로 호박이 잘린 부분에 배어나온 액체를 보고 "호박이 눈물 흘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이들 세계는 여전히 순수하고 곱습니다.
▲ 호박은 납작썰기한 다음 다시 채썰어 주세요. 호박을 믹서에 갈아도 좋은데 우리 집은 채썰어 먹는 걸 더 좋아한답니다.
ⓒ 김현자
▲ 호박을 많이 넣어 주세요. 붉은고추, 파란고추는 어슷썰기했고요. 쪽파는 머리 쪽은 통으로, 뿌리 쪽은 반갈라 호박 채썬 길이로 썰어 준비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오징어도 준비했습니다.
ⓒ 김현자
▲ 준비한 야채에 밀가루와 소금, 다진 마늘만 넣어 반죽했습니다.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조미료는 결코 필요하지 않습니다. 늙은호박의 자연스러운 단맛이 있거든요.
ⓒ 김현자
▲ 한 국자 혹은 두 국자씩 떠 넣어 노릇노릇 지지면 되겠죠? 다른 부침개와 하는 과정은 같지만 맛은 정말 남다를 걸요.
ⓒ 김현자
▲ 달걀은 가급 넣지 마시고요. 늙은 호박을 듬뿍 넣으면 더 맛있답니다. 막걸리를 곁들여 먹었답니다.
ⓒ 김현자
늙은호박의 변신은 어디까지 - 늙은호박밥
밥 위에 호박뿐 아니라 밤, 은행, 대추 등을 넣어도 좋겠지요. 우리 아이들은 호박만 넣어 해주는 것을 좋아해 저는 호박만 넣고 있습니다. 호박의 자연스러운 단맛이 입에서 살살 녹는답니다. 우리 아이들은 죽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호박은 먹여야겠고, 어떻게 먹일까? 이렇게 호박밥을 만들어 양념장으로 쓱쓱 비벼 주면 아이들이 잘 먹습니다. 호박의 자연스러운 단맛이 입에서 녹는 그 맛은 직접 느껴보라는 것만이 최고의 설명 아닐까 싶습니다.
▲ 미리 불린 쌀에 깍둑썰기한 호박을 위에 올려 밥을 짓습니다. 돌솥이나 뚝배기가 좋겠지요. 호박은 좀 넉넉히 넣으세요.
ⓒ 김현자
▲ 양념장은 붉은고추 푸른고추는 반 갈라 잘게 썰고, 쪽파도 총총 썰고 통깨와 참기름, 고춧가루...달래를 넉넉히 넣은 '달래장'은 어떨까요?
ⓒ 김현자
▲ 양념장 넣어 쓱쓱 비빈 다음 들기름병 넣어두고 카메라 챙겨 왔더니 아이들이 벌써 반절을 먹어 버렸습니다. "얘들아~! 사진 좀 찍고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