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상식

10년 장애인등급 판정

채운산 2010. 7. 17. 09:53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 판정,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단, 아고라라는 곳에 처음 글을 남깁니다. (제가 이곳에 글을 남기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해결점을 찾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답답한 마음에 글을 써 봅니다. 내용중에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아 틀린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써내려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치료하고 보게 되는 환자분들은 뇌졸중으로 한쪽 혹은 양쪽 팔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님, 아버님들입니다. 돈이 넉넉한 분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우리 서민들이 그렇듯 집안 형편이 고만고만하신 경우가 많고, 하루하루 열심히 생활하시고 잔꾀 없으신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분들이 왜 이런 몹쓸 병에 걸려 (뇌졸중으로 인한 반신 불수 / 편마비) 이렇게 고생하시는지, 뵙고 있노라면 마음이 아픈 경우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이런 분들은 6개월 이상 꾸준한 치료를 받게 되면 장애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장애'라는 딱지가 싫어서 장애를 받지 않으려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금전적인 (약간의) 도움을 위해 장애 등급을 대부분 발병한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받게 됩니다.

 

우리나라 장애 등급 판정 기준상 장애인으로 등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나라에서 정한 '장애인의 분류'에 따라 나가게 되고, 이는 2개의 대분류(신체적 장애, 정신적 장애)가 각각 중분류 소분류가 되어 15개의 소분류가 됩니다. 전문의인 저는 장애 판정시기 및 장애의 상태 등에 대해 검사및 진료기록을 객관적으로 한후, 장애 진단서의 항목을 성실하게 기재하여 건강보험 공단에 송부하는 일을 적게는 한달에 2-3건, 많게는 10건 정도 하고 있습니다.

 

장애를 입게 되면, 환자는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치료비가 여의치 않은 환자분들이 많습니다. (환자분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남자분인 경우, 일하던 것을 그만두고 치료에 전념해야 하고, 자연스레 직장은 그만두어 월급은 없는데다가 치료비의 부담까지 가중되고, 뇌졸중의 경우 점점 연령대가 젊어지다 보니 40대 중반의 뇌졸중 환자도 많아지고, 이분들은 자녀분들의 교육비까지 담당해야 해서 삼중고 사중고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단돈 만원도 아쉬운 것이 되는거고, 조금의 혜택도 환자분들은 너무나도 고마와 합니다.

 

장애 등급을받게된 환자는 고맙게도 우리나라의 여러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하철 요금 무료, 대중교통 요금 감면 (급수가 1-3급인 분은 50%, 나머지는 30%) 전화요금 감면, 이동통신요금 할인, 고속도로통행료 50% 할인, 공공시설 이용 요금 감면 등 감면 받는 혜택이 있습니다.

 

장애 등급이 높은 1-3급을 받는 환자분들은 이 외에도 지방세 (차량취득세, 등록세, 자동차세, 면허세) 면제, 승용자동차에 대한 특별소비세 면제, 전기요금 1~3급 20% 할인,  도시가스요금 1~3급 할인 (11%정도) 등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기초수급권자가 아닌 이상 돈을 받거나 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 저러한 감면이나 세제혜택, 그리고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 본인이 내야 되는 돈도 일정 부분 경감받게 됩니다.

실제, 하루 종일 장애를 가진 아이를 데리고 오고 데리고 가고, 여기 저기 치료를 받는 엄마에게도, 환자의 거동을 전혀 할수 없어 똥오줌을 다 받아내는 어머님이나 며느님에게도, 이런 도움들은 크지는 않더라도 꼭 필요한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환자분들은 되도록이면 도움을 조금 더 받고 싶어하게 되고, 4-6급 장애 등급보다는 1-3등급 장애 등급을 받기를 마음속으로 원하십니다.

 

이런 고마운 혜택으로 환자분들은 실제 장애 등급을 받은 후 부담을 덜 가지고 치료에도 임할 수 있었으며 여러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0년 1월 1일부로 의료기관에서 1급에서 3급 사이의 장애 등급을 발행하는 경우 장애 진단서와 함께, 장애 등급 판정기준의 장애 유형별 참고 서식, 검사 결과, 진료 기록지를 첨부하여 행정 관청에 제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전문의가 장애를 보고 판정한 후, 이것을 동사무소에 제출하게 되면, 장애 진단서가 나가던 것이, 이제는 진단서를 제출하면, 건강보험공단에서 다시 '심사'를 해서 환자에게 재발부 되는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장애 등급을 제대로 발부하지 못한 경우 심의해서 정확하게 발부 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 매우 좋은 제도이고, 환자분들에게 혜택이 가는 것 처럼 보입니다.

 

각과의 전문의들만이 대부분의 장애 등급을 낼 수 있는 상태였는데, 이제는 건강보험공단에서 나간 장애 등급에 대해 칼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건강 보험 공단에서 하는 심사나 칼질 자체가 좀 근거 없고, 상식에 맞지 않아 불쾌한 부분은 있지만, 그것도 어느정도 수긍할 수 있습니다. 이전, 정확한 잣대를 가지고 드린 환자분들이 등급에 대한 보호자나 환자분들의 불만이나 섭섭한 마음이나 토로가 저에게 오는 경우가 줄어들었으니 말입니다. 나갈때에 급수와 실제 환자 보호자분들이 받는 환자의 장애 급수는 다른 경우, 이는 건강보험공단에서 내린 판단이기 때문에 전문의인 저로서는 한결 편해진게 사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편해졌습니다. 그렇다면, 괜찮은걸까요?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이는 완전히 개악된 판정기준입니다.

이유를 하나씩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일단, 판정 기준부터 매우 까다로워 졌습니다.

예전에는 보행이나 일상생활을 못하는 기준을 가지고서 장애 진단이 나가던 것이 이제는 '수정바델지수'라는 지수를 가지고 점수를 매겨서 등급이 나가게 되어있는데, 언뜻 보면 매우 그럴듯한 지수이지만, 실제 이 지수를 가지고서 장애 급수를 1-3급을 받기란 어지간히 힘든게 아닙니다. 주관적인 느낌으로 2010년 1월 1일 이전 장애 등급 1등급을 받았던 환자라고 한다면, 2010년 1월 1일 이후 부터는 3등급 밖에 받을 수 없게 되어있는 구조라는 생각입니다.

 

둘째 형평성에서 매우 어긋납니다.

2003년 이전, 그리고 2010년 이전에 장애 진단을 받은 환자분들 중 현재에는 보행이나 일상생활을 매우 잘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여전히 장애 1급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 2010년 이후에 장애를 받는 분들은 주변에 아는 분들중 본인보다 훨씬 생활을 자율적으로 하실수 있는 분보다 더 낮은 장애 등급을 받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즉 최근 들어 장애 등급을 받게 된 분들은 이전에 장애 등급을 받은 분들에 비해 몇갑절 불공평하다 느끼십니다.

 

세째  건강보험공단에서 하는 '심사'라고 하는 것은 1급- 3급 사이의 소위 "잘못 평가"된 환자들을 제대로 평가합니다. 4급-6급까지 소위 "잘못평가"된 환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심사 기준이 마련되어있지 않습니다. 한 예로 좌측을 아예 사용하지 못하시는 할아버지의 경우 걸어다니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여 1급이 발부된 경우에도, 건강 보험 공단에서는 우측의 팔과 다리의 기능이 좋기 때문에 2급으로 삭감해서 통보됩니다. 이런 경우는 허다합니다. 1급이 나가면 3급, 2급이 나가면 4급, 3급이 나가면 5급. 환자분들 사이에서 우스개 소리로 아예 4급을 발급받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1급 - 3급 까지 혜택이 많은 환자들은 4급 - 6급으로 깎이기는 매우 매우 쉬워졌고, 4-6급의 장애 등급 환자가 행여 잘못 평가되어 1급 - 3급으로 정정되는 경우는 전무해졌습니다.

 

막상 장애를 가진 분들은 사회적으로 목소리가 적거나 없습니다. 제 생각엔 그분들은 먹고 살기도 빠듯하기 때문이지요. 장애를 가진 사람이 취직을 하기는 힘들고, 취직은 고사하고 치료를 계속 해야 하는 경우 치료비 마련을 위해 온 가족이 매달리다 보니, 본인들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가 힘들지 않나 생각됩니다.

 

장애 인구가 200만명을 육박하고 있습니다만, 정말 우리나라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제대로된 시설이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길거리 다니다 보면 장애를 가진 분들이 많이 눈에 띄지 않는건, 그만큼 나와서 활동하기가 어려워서입니다. 외국에 가게 되면 시장에서, 마트에서, 놀이동산에서 너무나도 자주 장애를 가진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그만큼 나와서 생활하기 편한 나라이기 때문에, 장애를 가진 분들에 대한 편견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생각됩니다.

 

저는 장애인분들의 장애 등급을 일부러 높게 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정확하게 주자는 겁니다. 그런데 그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엄격합니다. 그 엄격한 기준으로라도 제대로 주는 상황에서 나라는, 건강보험 공단에서는 이중 삼중 검사를 해서 더욱 엄격한 잣대를 대어 환자에게 혜택이 되는 것들 - 세금 감면등 - 을 막으려고 하는 느낌을 받는 것을 저는 지울수가 없습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온전한 평가가 아닌, 그저 환자들에게 인심쓰는 듯한 정책으로 밖에 비추어지지 않습니다.

 

만약, 정말 장애를 가진 분들의 수가 늘어 재정이 부족하다고 하다면, 이전의 장애를 가졌던 분들 중, 호전 된 분의 장애 급수를 조정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6개월 이상 꾸준히 환자를 본 사람들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가지고 내린 장애 등급을 서류 몇장으로 판단내려 강등시키는 정책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욱더 많은 도움을 드려야 하는 환자분들인데, 그나마 있는 작은 혜택들도 받을 길을 막는다면, 이는 숨통을 조이는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는 오늘도 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한 장애 1급 환자의 장애 진단서가 2급으로 경감되어 내려왔습니다. 결국 환자는 10만원이 넘는 돈을 병원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언어치료실에 불편한 몸을 끌고 가서 다시 평가를 받아 언어 평가 등급을 합산하여 1급으로 복수 진단을 내린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이 역시 확정된 것이 아니라서 기다려 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환자분은 저에게 고마와 합니다. 저는 환자분께 미안합니다. 이런, 장애를 가진 환자분들이 치료와 재활과 자활과 자립을 위해 신경을 더 많이 쓰는, 등급이 깎여 치료를 받지 못하고 그나마 응당하게 받았던 작은 혜택들마저 없어지는 것에 신경을 덜 써도 되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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