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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베푼 대로 보답 받은 譯官 홍순언

채운산 2007. 12. 28. 15:25
[베푼 대로 보답 받은 譯官 홍순언]








선조 25년(AD1592) 홍순언(洪純彦)이라는 역관(譯官)이 있었다.

그는 중국말도 능숙할뿐더러 학식도 풍부하고 외교 수완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또한 여러 차례 중국을 왕래하여 그 나라의 인심과 풍습도 잘 아는 외교관 겸 국제 장사꾼이었다. 홍순언이 어느 해 사신과 같이 중국에 갔는데, 장안(長安)에 거의 다다라서 보니 큰 대로변 양쪽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늘어서서 한 젊은 미남자가 포박되어 마차에 실려 가는 것을 보고 서로들 수군거리고 있었다.


잡혀가는 그 남자를 보니 용모도 수려하고, 태도도 고매하고 점잖은 걸로 보아 평범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늘어선 사람들 중 한 사람에게 그 청년이 잡혀가는 까닭을 물어보니, 그는 애석한 표정을 지으며 “저 청년은 정부의 재무 계통 공무원이었는데 공금 유용의 잘못을 저질러 국법에 의하여 사형장으로 끌려갑니다.”라는 것이었다.


홍 역관은 그 청년을 외모로 보나 태도로 보나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홍 역관이 사실을 확인해 보기 위하여 그 청년을 호송하는 책임자에게 다시 한번 자초지종을 물으니 도로변 사람의 말과 일치하였다. 성격이 쾌활하고 의협심도 강한 홍 역관은 그 청년의 장래가 매우 측은하게 느껴져 무슨 수를 써서든지 구해 주려고 결심하고 호송하는 관리와 협의하였다.


그리하여 유용한 공금을 변상하고 석방하기로 합의하였다. 홍 역관은 그 청년에 대해 그렇게 된 사유와 가정환경 등 여러 가지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러한 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용기를 내라는 말 한 마디만 남기고 장안을 향하여 발길을 재촉했다. 그 청년은 깊이 감사하는 마음과 더불어, ‘동방예의지국인 조선에는 의로운 사람이 많다더니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구나’ 라고 느끼면서 홀연히 사라졌다.


그런 일이 있고 몇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홍 역관은 또 다시 사신의 일행으로 장안에 가게 되었다. 홍 역관이 하루는 장안의 친한 친구와 술집에 가게 되었는데, 술집의 시설도 찬란하고 음식도 산해진미가 가득한데다 접대하는 여자 역시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주연이 시작되었는데 옆에 앉은 그 여자는 보면 볼수록 행동거지가 고상하고 예의범절이 보통이 아니었다. 홍 역관이 조심스럽게 그 여자를 대하면서 일반적인 세상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농담도 해보았지만 추호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그녀는 예의범절이 몸에 배어 있는 여성이었다. 홍 역관이 술이 얼근하게 취해 그 여자의 신상에 대해서 물으니 대답을 피했다. 그래도 거듭해서 물으니 사연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지방 태수(현재의 군수)였던 분으로 성격이 청렴결백 하고 정직하여 검소한 생활을 하셨는데 장 질환으로 오래 고생하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후 혼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어머니도 오래 병석에 누워 계시다가 3개월 전에 돌아가셨으며, 그동안 아버지와 어머니의 치료비와 장례비로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고 했다. 그 빚의 채권자가 바로 이 요리 집의 주인으로서 빚을 갚지 않으니 이 집에 와서 술심부름을 하라 했던 것이다.


그녀는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없는 형편에 할 수 없이 한 달 전부터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원래 천성적으로 정의감과 동정심이 강한 홍 역관은 사연을 듣고 이 가련한 여자를 구해 주려고 결심하였다.


그는 술좌석을 끝낸 후 주인에게 그 빚을 청산해 주고 그 여자를 자유의 몸이 되게 해주었다. 홍 역관이 거금을 들여 그 여인을 구해 주니 주위에서는 이상한 눈빛으로 보았으나 홍 역관은 어떤 조건도 제시하지 않고 아무런 미련도 없이 그 자리를 떴다. 이처럼 크나큰 고마움에 대해 그 여자가 얼마나 감격했을지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홍 역관이 이러한 선행을 베풀고 다니는 가운데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아무런 대책 없이 일본의 침공을 당하게 되니 우선 명나라에 구원병을 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소위 사은사(謝恩使)에 신점(申點), 진주사(陳奏使)에 정곤수(鄭?壽) 역관(譯官) 홍순언(洪純彦)을 급히 명나라에 파견하였다.


그러나 명나라는 수년간의 내란으로 국력이 약화되고 민심이 아직 안정 되지 않아 조선의 구원병 요청을 거절했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워낙 사태가 급박하였으므로 수차례에 걸쳐 거듭 사신을 보냈으나 면담까지도 불응했다. 하루는 우리 사절단이 명나라 대궐 정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수십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입궐하던 어떤 대신 하나가 우리 사절단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대신이 들어간 후 대궐에서 사람이 나와서 우리 사신 들을 들어오라고 했다.


사절단이 들어갔을 때 병부상서가 홍 역관을 보더니 반가이 맞아들이면서 자신을 못 알아보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우리 사절단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병부 상서가 홍 역관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 참으로 귀하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내가 몇 해 전에 사형장으로 호송되어 갈 때 귀하께서 살려주신 병부상서 석성(石星)입니다”라고 하였다. 홍 역관은 그제야 알아보고 반가이 수인사를 하였다.


홍 역관을 만난 석성은 자기를 살려 준 은인을 가벼이 대할 수가 없어서 그날 저녁에 자기 집으로 초대하였다. 홍 역관이 석성의 웅대한 관저에 들어가서 자리를 정하니 융숭한 저녁상이 나왔다.


곧이어 미모의 여자가 들어와서 접대를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병부상서 부인으로서 예법 상 석성의 특별한 배려로 동석하게 된 것이다. 홍 역관이 그 부인을 보니 세상에서 보기 드문 미모로 행동거지와 예의범절이 훌륭 하다고 느끼고 있는데, 홍 역관의 무릎에 엎드려 엉엉 우는 것이었다.


그 여자가 울면서 “제가 어떻게 하면 귀하의 은혜를 갚을까 하고 한탄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 흐느끼면서 ”몇 해 전에 베풀어 주신 은혜 참으로 고마웠읍니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역관이 자세히 보니 몇 해 전에 자기가 몇몇 친구와 장안 어느 요리 집에서 만났던 그 여자인 것을 알았다. 그래도 너무 이상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세히 살펴보고 목소리와 태도를 회고해 보아도 틀림없는 그 때 그 여자 임이 틀림없었다.


세상에 이러한 오묘한 인연도 있나?’ 병부상서 석성도 이 광경을 보고 놀랐다. 그들은 서로 그들 내외가 과거에 격어 온 사정을 비로소 알고 감격하면서 두 사람 모두 홍 역관이 살려 준 덕택으로 오늘이 있게 되었다면서 술좌석이 더욱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병부상서 石星은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에게 군사 4만 3천과 요동 부총병 조승훈(祖承訓)에게 군사 5천을 주어 조선에 구원병으로 파견하여 위기에 처한 왜란을 막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넓은 세상, 긴 역사 속에 보이지 않는 진리의 흐름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요귀의 유혹에는 파멸이 오고, 바른 도(道)의 행함에는 영광이 온다는 옛말이 생각나게도 한다.



출처 : 나그네의 집
글쓴이 : 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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