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사진

[스크랩] 충화면 가화리 금마

채운산 2007. 3. 4. 07:41

 

출처 : 천등산
글쓴이 : 서동왕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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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방문

 

2007. 정월 보름날은 새벽부터 인터넷으로 고향을 방문했다.
남편은 새벽에 외숙모 님 뵙는다고 일찍 나갔는데
날씨가 잔뜩 흐리다가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다.
그 동안 예년에 없이 온난화 현상으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고
요새는 영상 17°C도 나가서 어떤 사람들은 벌써 반 팔을 입고 다니는 이도 있었는데
오늘부터는 갑자기 추워져 중부지방은 눈도 오고 영하 15°C가 된다고 한다.
요새 며칠 동안은 딸네 집에 가 있다 와서 궁금해 인터넷을 떠돌다가 고향으로 향했다.
서동요 촬영장을 짓기 시작하는 사진을 보니 분명히 고향이건만 아무리 봐도 낯이 설 다.
고향 떠나 온지가 40여 년이 지났으니까 변해도 몇 번은 변할 때도 됐는데
특히 88년 여름 집중 호우 때 뒷동산이 떠내려가고
그 밑 밭도 떠내려가고 했다는 소리는 들었을 때는 왠지 서운했다.
그 모이마당에서 봄이면  할미꽃도 따며 진달래 꺾고, 삘기 뽑아 먹던 곳인데...
눈감고도 다닐 수 있던 이웃 친구네 집 
잔뜩 흐려 캄캄한 밤에도 길쌈하러 마실 오고가고 했는데
누구네 텃밭이 얼만한지 분간이 안 간다.
다행이 우리 집은 헛간 채와 담은 없어졌어도 안채와 사랑채는 있는데 초가였던 것이
안채는 빨간 양철집이던가고 사랑채는 스레트인가 초록색으로 보이네!
사랑채는 함실 아궁이인데 아버지께서 철문으로 꼭 맞게 달아 놓으셨는데
1994년에 가보니 그냥 있더니, 2005년 9월 25일에 서동요 드라마 할 때 가 보니
그것도 내려앉았다.
우리 이사할 때는 친구 어머니가 이사를 와 사시다가
아들네 집에 가시고 방문을 자물쇠로 잠가놓고
사립문은 한일(一)자로 제주도처럼 나무 한 개 걸쳐놨었다.
우리는 집에 있는 샘 위의 큰 은행나무던가 그늘에 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었다.
샘 밑 미나리꽝은 잡풀만 수북하고, 샘의 빈지 둑은 왜 깨뜨리다 말았나
그냥 두면 모양이 좋을걸!
언제나 철철 넘치는 바가지 샘인데
논 물 댈 때나 쓴다고 했다.
동네에 샘이 두갠데 동서로 나누어 동쪽 샘은 동아시 사람들이 먹고,
서쪽 샘은 서아시 사람들이 먹는데 우린 동아시다.
그 샘을 청소할 때는 갓집 친구와 내가 주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끼가 여름 한낮에는 조그만 건드려도  일어나는데
물 품느라고 덜거덩 떨그렁 해도 안 나왔다.

우리가 이사 오고 얼마 뒤에는 고향에도 전기도 들어오고,
집 앞으로 차도 다니며,
집집마다 샘을 파서 공동 샘은 안 쓰고 논물 댈 때나 쓴다 한다.
놀러 간 날은 날씨가 춥지도 덥지도 않고,
바람도 없어 안방처럼 낮잠 한 숨 푹 자고싶은데 아이들 때문에 서들어 오다
동생 친구 어머니를 만났는데 살던 고향이 아니라 하니
그가 쭉 살아왔어도 "영 마차실이 아니요." 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어머니 갖게 장에 가시면 마중 나와 놀던  잿배기 모이마당은
밭으로 변하고 큰 바위 둘만 있었는데
그곳도 놀던 곳이라고 정이 들어 사진을 찍었다.

 집에 오니 아들이
"엄마, 사진 많이 찍으셨어요?"
"응, 나는 동영상이 더 잘 찍혀 그걸로 다 찍었다."
"에이! 엄마는 그것은 사진을 찍으면 쪼그맣게 나오고 저장해도 안 좋아요.
자동으로 찍으시라니까! 카메라 줘보세요.
한참씩 누르고 있으면 잘만 찍히는데..."
내가 찍은 사진은 모두 허사였다.
찍는 것 배우라고 줘서 갖고 갔더니...
이 다음에 가면 다시 찍어야겠다.
그래도 인터넷 검색하면 여러 사람이 찍은 걸 볼  수 있고
스크랩도 할 수 있으면 해온다.
바탕화면에 깔면 고향 품에 안긴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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