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부부와 앵무 한 쌍
선왕이 승하하자 꿈에도 생각지 않던 왕제가 등극이라
신라 흥덕왕(興德王) 초년 섣달그믐
함박눈 펑펑 쏟아지는 밤
장화부인(章和夫人)은 봄부터 앓던 사람이라
왕비 노릇 제대로 한번 못해보고 있다가
시월에 즉위 식 때에도 불참하고
왕비 복도 안 입고 간직해 두었던 것을
갈아입고 상감을 불렀다
왕 위에 오르기 전에는 부인을 보살펴 줬는데
정사로 제대로 보살필 수 없고
왕비의 병세는 점점 쇠약해져서
상감은 한 번도 기쁜 적이 없었다
웬일인가 싶어서 와보니
눈 구경하자고 불렀다
내외는 손을 잡고 댓돌 위에 서 구경하다가
왕을 불러서 보니
눈물이 가득하였는데
바로 죽었다
새해가 되자 신하들은 왕비 간택을 서둘고
궁녀들은 사랑을 받으려고 넘실거리는데
왕은 모두 거절하고 간택도 중지 시켰다
내전의 제도까지 고쳐 궁녀들을 없애고
남자들이 모든 일을 대신했다
왕은 죽은 비만 생각하느라 정사도 싫어해
신하들이 알아서 일을 처리했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대신이 선물로 받은
당어에 능한 앵무새 한 쌍을
우리말로 몇 마디 가르쳐 진상을 했다
상감은 그 앵무들과 위로하며
말도 가르치고 소일하는데
그 신하가 상감께 왔다
새들이 당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웃고 있는데
어찌 웃느냐고 물어서
“앵무 내외 금슬이 좋습니다
암놈이 수놈에게 배고프지 않느냐고 하니
나는 괜찮은데 임자가 시장하겠다고 합니다”
왕은 이 소리를 듣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그날 밤 궁인들이 잠든 뒤에
왕비 능으로 가 밤새 통곡하였다
어느덧 가을 밤 새와 놀다가 잠들려 하는데
“여보게! 여보게!”
이 소리를 듣고 새장으로 가 보니
암놈이 죽어 가고 수놈은 어쩔 줄을 모른다.
왕은 전의를 불러 고쳐보라고 했지만
새는 죽어버렸다
왕은 뒷동산에 묻으라 했다
수놈은 물과 모이도 안 먹고 사흘을 굶으며
창자가 끊어지도록 슬피 운다.
“네 설움 내가 안다”
“상감마마”
“오냐 네 마음 짐작한다.
왕은 새와 함께 울었다
거울을 조롱 속에 넣어주면
친구 생겨 좋을 것 같아 비춰주니
처음에는 암놈인 줄 알고 좋아하더니
나중에는 쳐다보지 않더니
상사병으로 죽었다
왕이 손수 뒷산에 합장해 주었다
그 가을부터 왕도 환후가 더했다
미물도 뒤를 따라 가는데
무슨 낙으로 살려고 따르지 못 했나 부끄럽구나.
온갖 약도 먹지 않고 앓다가
왕비 승하한 곳에서 눈 구경하며
영무와 같이 합장해 달라고 유언하고
십 년 째 되는 섣달그믐 날
그 자리에서 승하했다
2001.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