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사진

서동요세트장으로 변한 고향 15.10.18

채운산 2015. 11. 9. 17:23




















 

동네 사진을 봐도 내가 살던 고향은 암만 봐도 아닌 것 같다 .꿈속의 고향처럼 어디가 어딘지 확실하지 않다. 동쪽 재빼기도 서쪽 재빼기도 깎아내려 없어지고 마을 집들이 헐리고 딴 데다 새로 집을 지어서 분간하기 어렵다 . 길도 05년에 있던 길이 아니다.




송정리 뒷산 하얀 차 있는데서 사진 찍은 것을 살펴보면 솔모퉁이에 이층으로 무슨 건물을 지었다.

서당골 들에 있던 소나무는 없어지고, 우리 밭께 허연 담 같은 게 있는데 비석들이 있는 것 같고 그게 뭔지 모르겠다.

청소년수련관 지은 곳은 서당골 논들이 있었던 곳이다.

거기서부터 한 마을로 봐야 되겠다.

솔모퉁이에서 수련관 쪽으로 거운데 움푹 들어간 곳이 우리 산이었는데 그 밑을 아버지께서 밭을 일구어 메밀도 심고, 고추와 고구마도 심었었는데 그 밭인지 최 씨네 밭인지 무슨 나무를 심어 자란 것 같다. 지금은 누가 짓는지? 이사 올 때는 우리산은 용골 사람이 샀었는데.

마차실에 토박이는 지금 일곱 집이 산다고 한다.


부여군청소년수련원은 2014. 2. 11 충화면 가화리 서동요세트장 옆으로 옮겨 왔는데 여러 가지 시설들이 잘 돼있어 전국 초등학교에서 많이 온다 한다.

1층은 대형식당이 있고, 2층에는 강당과 4인 가족실이 16, 3층과 4층에는 8인실 42개가 있어 일반 단체나 가족 숙박이나 휴양할 수 있고, 드라마 촬영할 때도 많은 사람들이 묵을 수 있다 한다.

야외시설로 축구장, 농구장, 배드민턴장, 스카이라인, 스카이점프대외 12종의 실험을 할 수 있다 한다.




가화저수지에 출렁다리를 놓는다는 소리를 들으니 얼른 가보고 싶었다. 고향을 좋은 관광지로 만든다니 반갑고 기쁘다. 지나가며 보니 울바위의 동쪽과 송정리 뒷산으로 이어지는 다리 공사가 한창이다. 내년까지 완공한다고 한다.

자연석을 깨뜰고 굴을 판다고 하는데 이게 마음이 아프다. 가까이 가서는 안 봤지만 먼데서 봐도 훼손 된 곳은 허옇게 보인다. 다리 놓기 위해서 기반 시설을 하기 때문이 지만. 물론 좋게 만들자고 하는 공산데 훼손하나도 안되게 허공에다 만은 못 놓기 때문이다. 아래 연두색으로 물위에 임시 다리를 놓고 일하기 편하게 하는 것 같다. 그럼 송정리도 이웃 동네가 되니까 발전도 되고 관광객도 편하게 자동차 주차장과 식당도 만든다 한다.


마차실은 옛날에 어떤 스님이 부잣집으로 시주를 갔는데 안줘서 괘씸한 생각이 드는데 이 동네 풍수를 보니 제비가 날개를 활짝 편 상이라 주인보고 저쪽(서쪽)을 가리키며 그 쪽을 깊게 골을 파놓으면 마을이 잘 될 것이라고 일러주었는데 그 뒤로 일러준 대로 파 놨다 한다.

그 뒤로 차차 동네가 망했다고 아버지께서는 어디서 들으셨는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내가 지형을 봐도 꼭 그렇게 생겨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동쪽 재빼기 넘어가면 팥죽골(팥죽굴)이 있는데 왜 이름을 팥죽골이라고 하나? 옛날에 팥죽 장사가 살았었나. 사람 사는 집은 한 채도 없는데 나 어릴 때 북쪽으로 젤 높은 산이 임 씨네 산인데 그 중턱에 초가 두 칸을 지어서 김 씨네를 산지기로 주었다. 그 집에서 내 친구네가 살았는데 김 씨가 갑자기 이름 모를 병을 얻어 밤낮으로 피를 많이 쏟는다는데 당장 먹을 끼니도 없는데 손을 쓸 수도 없을 때 아버지께서 주사를 사다 놓아주셔서 다행히 피는 멈췄지만 완치를 못하고 끝내 세상과 하직을 하셨다. 품팔이나 하고 나무 팔아먹는 집인데 살 수가 없으니 갖게 장께로 이사를 갔다. 거기서는 뭘 하며 살았는지는 몰라도 장에서 가끔 동네 사람들이 만났다고 했다.

그 뒤로 팥죽골 집은 비어 있었다.

바로 옆 동쪽 산하나 넘어가면 거기가 서당골이다. 나는 들에 갈 때나 나물 캐러 다니면서 이름을 왜 서당골(서당굴)이라고 했나? 이름은 이렇게 좋은데 집은 한 채도 없는지 옛날에 누가 살았었나? 서당이 있었나? 이런 생각을 했고 지금도 그게 참 궁금하다.

그런데 팥죽골이나 서당골에 돌아다니다 보면 질그릇 깨뜨려진 것과 사금파리들이 있는 것을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누가 먼데서 거기까지 가서 그런 것을 버리진 않았을 것인데!

내가 이번에 송정리 뒷산에서 사진 찍은 것을 가만히 살펴보면 청소년수련원을 서당골에 지었다. 이제야 이름과 맞먹는 건물이 들어서서 발전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마차실이 발전하느라고 동쪽 재빼기와 서쪽 재빼기도 깎아내려 없어졌다. 땅을 깎고, 돋고, 길을 닦고, 빈 집터들을 어떻게 이용할지, 또 관광지로 묶여 있는 땅들을 무엇을 만들면 어떤 모양이 될까 궁금하다.

그 때는 풍수장이가 뭐라 할지도 궁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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