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잊은 설
설이 돌아오니 나이 잊은 듯 고향이 더 그립다
눈만 뜨면 보이는 오산도 하얗고
울바위도 하얀 밑에서
저수지 어는 소리 쩡! 쩡! 쩌르렁~
굉음이 온 동네 울릴 때
남아들은 장갑도 없이 수렁배미 논에서
썰매 타고 팽이를 치다 튼 손으로
콧물이 흐르면 무명 옷소매에 쓱 닦고 놀다보면
한나절이 한 참 지났다
바람이 불면 동쪽 재빼기 서쪽 재빼기에서 연 날리는데
북풍이 불면 동쪽에서 연 날릴 때는
송정리 물문께 까지 가물가물
한쪽에선 연싸움을 한다고 요령부리고
꼬마들은 가오리연 들고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릴 때
기러기들은 떼를 지어 어디로 가는지
노래 부르며 하늘에 수를 놓는데……
할아버지 방 벽엔 항상 노끈 뭉치가 매달렸다
모시 짤 랭이 구해서 소일로 꼬아 놓으시면
동네 애들의 연줄이 된다
할아버지 저 노끈 백 발만 주세요
저는 백 오십 발이요
용돈이 생긴다고 좋아하시며
한 발 두 발 세 발
초가지붕에 흰눈이 소복이 내리고
부지깽이 같은 수정고드름이 발을 느리다
햇볕에 못 이겨 뚝 떨어지는 소리 들으며
마당에 짚 둬 단 엇갈리게 해서
가마니때기로 둘둘 말아 묶어 놓고
그 위에 넓고 두꺼운 널빤지 올려놓고
여아들은 양쪽에서 쿵더쿵! 쿵더쿵!
눈이 없는 마른 명절엔 집 앞 채전에서
편 갈라 가위 바위 보로 승부를 결정하고
이긴 편이 이 두둑 저 두둑 안 잡히려고 옮겨 다니고
진편은 고랑에서 이긴 편의 옷이나 몸이 손에 닿으면 잡는 것인데
안 잡히려고 통치마 자락을 움켜잡고 안간힘을 다 쓰다 잡히면
반대로 잡힌 편이 고랑에서 두둑에 있는 편을 잡을 때
추운 줄도 모르고 재미있던 시절
그리운 시절아!
2010. 2. 1(모레가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