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글

나이 잊은 설

채운산 2011. 2. 8. 08:16

 

 

나이 잊은 설



설이 돌아오니 나이 잊은 듯 고향이 더 그립다

눈만 뜨면 보이는 오산도 하얗고

울바위도 하얀 밑에서

저수지 어는 소리 쩡! 쩡! 쩌르렁~

굉음이 온 동네 울릴 때

남아들은 장갑도 없이 수렁배미 논에서

썰매 타고 팽이를 치다 튼 손으로

콧물이 흐르면 무명 옷소매에 쓱 닦고 놀다보면

한나절이 한 참 지났다


바람이 불면 동쪽 재빼기 서쪽 재빼기에서 연 날리는데

북풍이 불면 동쪽에서 연 날릴 때는

송정리 물문께 까지 가물가물

한쪽에선 연싸움을 한다고 요령부리고

꼬마들은 가오리연 들고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릴 때

기러기들은 떼를 지어 어디로 가는지

노래 부르며 하늘에 수를 놓는데……


할아버지 방 벽엔 항상 노끈 뭉치가 매달렸다

모시 짤 랭이 구해서 소일로 꼬아 놓으시면

동네 애들의 연줄이 된다

할아버지 저 노끈 백 발만 주세요

저는 백 오십 발이요

용돈이 생긴다고 좋아하시며

한 발 두 발 세 발


초가지붕에 흰눈이 소복이 내리고

부지깽이 같은 수정고드름이 발을 느리다

햇볕에 못 이겨 뚝 떨어지는 소리 들으며

마당에 짚 둬 단 엇갈리게 해서

가마니때기로 둘둘 말아 묶어 놓고

그 위에 넓고 두꺼운 널빤지 올려놓고

여아들은 양쪽에서 쿵더쿵! 쿵더쿵!


눈이 없는 마른 명절엔 집 앞 채전에서

편 갈라 가위 바위 보로 승부를 결정하고

이긴 편이 이 두둑 저 두둑 안 잡히려고 옮겨 다니고

진편은 고랑에서 이긴 편의 옷이나 몸이 손에 닿으면 잡는 것인데

안 잡히려고 통치마 자락을 움켜잡고 안간힘을 다 쓰다 잡히면

반대로 잡힌 편이 고랑에서 두둑에 있는 편을 잡을 때

추운 줄도 모르고 재미있던 시절

그리운 시절아!



2010. 2. 1(모레가 설) 



'자작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쭉  (0) 2013.04.25
글 보는 파리  (0) 2013.04.25
우유  (0) 2010.12.01
노랑호박  (0) 2010.09.04
폭염주의보 내리는 날   (0) 2010.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