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중 인천항에 정박해 있는 메러디스 빅토리호 - 흥남철수 성공뒤엔 `기적의 배`가...59명 정원 메레디스 빅토리호 피란민 1만4000명 자유의 품으로 인도. 1만4000명의 피란민은 물도 약도 없이 3일간의 항해 끝에 부산항에 닿았다.
흥남철수광경. 흥남부두에 몰려나온 피난민들이 `유엔`군의 `LST`를 다투어 타고 있다. 이 사진은 미공개기록사진 중의 하나다
임시수도 부산의 천막촌. 1951년
허기를 메우고 있는 피난가족 - 피난길에 지친 한가족이 연합군이 배급한 급식으로 허기를 메우는 모습 ■ 게재/등록일 : 19510104
다큐극장 "한국전쟁" - 피난길에 지친 한가족이 연합군이 배급한 급식으로 허기를 메우는 모습.
압록강에 첫발을 딛고 맑은 물을 수통에 담고 있는 국군용사.
10월26일 오후 5시50분,
함경남도 혜산에 도착한 6사단 7연대 수색대원의 잊을 수 없는 모습이다.
6.25 - 피난민 : 한국전쟁 피난민-전쟁고아 (사진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음)
남으로...남으로... 50년 7월29일 국군의 소개명령으로 지게나 소가 끄는 수레에 가재도구를 싣고 남쪽으로 향하는 피란민 행렬
철수함정을 타려고 흥남부두에 쇄도한 북한동포들 - 1950년 12월12일부터 약 한달동안, 철수하는 국군과 유엔군을 따라 약10만명의 북한동포가 해상을 통해 남쪽으로 탈출했는데 사진은 이 때의 광경이다. 수십척의 함정이 동원되어 이루어진 이들 수송은 한국과 유엔군의 철수 못지않게 대규모적인 것이었으며, 큰 기적을 이룬 작전으로 유명했다.
서울시민들 - 51년 1. 4 후퇴때 서울시민들이 철도에서 피난하고 있는 모습 - 이고...지고..피란행렬. 51년 1.4후퇴 때 서울시민들이 철도를 따라 피란하고 있다. 피란보따리 위에 어린이가 앉아 있는 모습도 보인다.
한국전쟁 - 분단된 조국과 함께 자유를 찾는 일가족들의 모습
완전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시가와 전난민들(1950년 9월28일 서울수복당시)
북한동포의 목숨 건 남하 행렬 - 1950년 12월4일 평양을 철수하는 국군과 유엔군을 따라 북한동포들은 이렇게 부서진 대동강 다리를 결사적으로 건너 남하하기 시작했다.
6.25 피난생활 "금지구역" ( 게재/등록일 : 19510201)
38선을 긋는 순간 - 유엔군 연락장교 제임스 레이 대령(왼쪽)과 인민군 연락장교 장춘산(오른쪽)이 판문점에서 휴전선을 정하는 협정을 시작하고 지도에 38선을 긋고 있다.(1951.11.26)
1953년 7월 27일 하오 10시 정각부터 12분간에 걸쳐 조인된 정전협정문의 서명.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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