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글

변하는 고향

채운산 2006. 9. 20. 13:33

 

변하는 고향

 

삼십 년 만에 차타고 충화에 다다르니 

지석리의 고인돌은 제 자리를 지키는데

호랑이가 살아 백 명이 풍장 치며 넘었다던 백중재(百衆)

소나무 울창하고 문둥이 산다던 험한 산 길

 무명 책보 허리에 띠고

 겨울에도 닳아빠진 남자 검정 고무신 신고

발발 떨며 어린 소나무 잡고 다니던 길

정상도 깎아내려 신작로 되고

누구네 사과 밭 되었나?

 

오갈 적 만나고 헤어지던 친구네 동네

번개같이 지날 때

어렵게 세운 삼성초교 폐교 된 지 몇 년?

 이웃 동네도 잘 모르겠네

 이십 년 동안 살던 나의 집

별로 변한 게 없어 다행이지만

과부 혼자 자식 네 집 왔다 갔다

 흉년 밥그릇의 수렁배미 문전옥답은

국도로 두 동강 났네

 허물어진 집터들이며

 일천구백팔십팔 년 홍수 피해로

뒷동산도 옛 동산이 아니네

 

고린 장터 많은 고동배는 사과가 주렁주렁

단오 때 그네 뛰던 밤나무 밭은

시끄럽게 매미 노래 부를 때

어르신네들 멍군 장군 하시며

장기바둑 두시고

밀대방석과 세상 이야기 엮던 밤나무 밭의 휴식처는

뽕나무 밭 되고

 

만 세 살라는 만수동(萬壽洞)

글자가 변하여 만수(滿水)로 물만 가득한데

초가집 헐고 양옥집 지니

경치 좋은 별장이라

 

저수지 건너 오산

빈대로 망했다는 절터 옆 굴속에서

 육이오 때 사람들이 피난살이도 했고

서당 야회 수업 때 삼촌 따라가 놀던 곳

 산 풀 뜯어먹고 손으로 약수 떠먹고

참나리 독무릇 캐왔지!

 장항 제련소 굴뚝 연기 본다고 소풍가던 곳

울창해서 호랑이 나올 것 같네


경치 좋다 소문 난 울바위

 앞치마를 두른 듯 삼면이 저수지

 기암괴석이 장관 이뤄 낙화암 같고

이리 꼬불 저리 꼬불 눈감고도 다닐 수 있었던 길

 땅 투기꾼들 장난으로 팔고 사고 몇 번

푸른 물 위에 유람선 노랫소리에

 고기들 즐거워 팔딱 팔딱

 밤 되면 똑딱선으로 변해

메기, 가물치, 붕어 울던 밤

 동아시 서아시 공동우물의 아낙

빨래하며 푸성귀 씻을 때

입방아에 함박웃음 짓던 곳


 캄캄한 밤이면 구수한 모닥불에

밀대방석 펼쳐서 초롱불 밝혀놓고

모시 째고 삼다 더우면

철철 넘는 바가지 샘에서 목욕하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옷 바꿔 입었다는 소동 들렸는데

여치는 반딧불에 밤새워 베 짜서

 한산장 추석 대목 보려고

북두칠성, 은하수가 척 기울도록

이 집 저 집 모여 앉아 도란도란

 

모이 마당에서 연 날리고

논에서 썰매 지치며

 팽이 치고, 딱지 치고, 못 치기, 자 치기 하던 애들

 할아버지 길 접어드네

 재빼기 술집은 지금도 여전해

 하루 일과 피곤타 술잔 나눌 때

 땅거미에 차바퀴 돌리는 아쉬움

세상이 변한다 해도

 마음의 고향은 변하지 않아

 못 잊을 그리운 고향은

산으로 병풍 치고 하늘만 빤한 곳에

울바위 마당바위에서 보면

동네 골목 빤히 보이고

뒷동산 및 대숲 속에

고대광실 기와집의 아름다움과

누각에서 처녀들의 노래 부르는 소리가

백일홍 곱게 핀 사이로 흘러나오던 곳

 그 밑의 담장과 언덕엔

 울긋불긋 나팔꽃이 엉키어 뽐낼 때

영영 못 잊을 마음의 영상이여!!!


1995. 1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