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고향
변하는 고향
삼십 년 만에 차타고 충화에 다다르니
지석리의 고인돌은 제 자리를 지키는데
호랑이가 살아 백 명이 풍장 치며 넘었다던 백중재(百衆재)
소나무 울창하고 문둥이 산다던 험한 산 길
무명 책보 허리에 띠고
겨울에도 닳아빠진 남자 검정 고무신 신고
발발 떨며 어린 소나무 잡고 다니던 길
정상도 깎아내려 신작로 되고
누구네 사과 밭 되었나?
오갈 적 만나고 헤어지던 친구네 동네
번개같이 지날 때
어렵게 세운 삼성초교 폐교 된 지 몇 년?
이웃 동네도 잘 모르겠네
이십 년 동안 살던 나의 집
별로 변한 게 없어 다행이지만
과부 혼자 자식 네 집 왔다 갔다
흉년 밥그릇의 수렁배미 문전옥답은
국도로 두 동강 났네
허물어진 집터들이며
일천구백팔십팔 년 홍수 피해로
뒷동산도 옛 동산이 아니네
고린 장터 많은 고동배는 사과가 주렁주렁
단오 때 그네 뛰던 밤나무 밭은
시끄럽게 매미 노래 부를 때
어르신네들 멍군 장군 하시며
장기바둑 두시고
밀대방석과 세상 이야기 엮던 밤나무 밭의 휴식처는
뽕나무 밭 되고
만 세 살라는 만수동(萬壽洞)은
글자가 변하여 만수(滿水)로 물만 가득한데
초가집 헐고 양옥집 지니
경치 좋은 별장이라
저수지 건너 오산
빈대로 망했다는 절터 옆 굴속에서
육이오 때 사람들이 피난살이도 했고
서당 야회 수업 때 삼촌 따라가 놀던 곳
산 풀 뜯어먹고 손으로 약수 떠먹고
참나리 독무릇 캐왔지!
장항 제련소 굴뚝 연기 본다고 소풍가던 곳
울창해서 호랑이 나올 것 같네
경치 좋다 소문 난 울바위
앞치마를 두른 듯 삼면이 저수지
기암괴석이 장관 이뤄 낙화암 같고
이리 꼬불 저리 꼬불 눈감고도 다닐 수 있었던 길
땅 투기꾼들 장난으로 팔고 사고 몇 번
푸른 물 위에 유람선 노랫소리에
고기들 즐거워 팔딱 팔딱
밤 되면 똑딱선으로 변해
메기, 가물치, 붕어 울던 밤
동아시 서아시 공동우물의 아낙
빨래하며 푸성귀 씻을 때
입방아에 함박웃음 짓던 곳
캄캄한 밤이면 구수한 모닥불에
밀대방석 펼쳐서 초롱불 밝혀놓고
모시 째고 삼다 더우면
철철 넘는 바가지 샘에서 목욕하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옷 바꿔 입었다는 소동 들렸는데
여치는 반딧불에 밤새워 베 짜서
한산장 추석 대목 보려고
북두칠성, 은하수가 척 기울도록
이 집 저 집 모여 앉아 도란도란
모이 마당에서 연 날리고
논에서 썰매 지치며
팽이 치고, 딱지 치고, 못 치기, 자 치기 하던 애들
할아버지 길 접어드네
재빼기 술집은 지금도 여전해
하루 일과 피곤타 술잔 나눌 때
땅거미에 차바퀴 돌리는 아쉬움
세상이 변한다 해도
마음의 고향은 변하지 않아
못 잊을 그리운 고향은
산으로 병풍 치고 하늘만 빤한 곳에
울바위 마당바위에서 보면
동네 골목 빤히 보이고
뒷동산 및 대숲 속에
고대광실 기와집의 아름다움과
누각에서 처녀들의 노래 부르는 소리가
백일홍 곱게 핀 사이로 흘러나오던 곳
그 밑의 담장과 언덕엔
울긋불긋 나팔꽃이 엉키어 뽐낼 때
영영 못 잊을 마음의 영상이여!!!
1995. 1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