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지막
당신의 마지막
당신의 마지막 모든 것들
당신의 마지막 하신 말씀
당신의 마지막 하신 일들
평상시 유언처럼 하신 말씀
모든 것들이 눈에 선하고
귀에 들립니다
마지막 가시는 순간까지도
자식을 걱정하시느라
덜 바쁠 때 가신다고 계획하신 일
그래서 단식하시며 그렇게 가셨습니다
아들이 모범 공무원상을 타는 것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니
상장을 어머니 방에 붙여두고 보셨습니다
봄 방학 때 가시려고 예정하신 일
외손녀 시집가기 전에 가셔야 한다고
고향에 과부가 딸네 집에 사는데
욕창을 앓다 외손녀 내일 시집가려고
음식 장만해 놓은 걸 그날 죽어
그날 장사 치르고
예식장에는 부정 탄다고 신부 부모는 못 들어갔다 하시기에
혼인 때 돌아가시면 두 집에서 일 치르면 되지 않느냐고 여쭈니까
“흐흠! 말썽 사나워 못 써!”
하시더니 한 달을 앞두고 가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외손녀 옷 사 입으라고 주신 돈으로
표 나는 옷을 샀답니다
초상났을 대 제일 많이 운 사람은
어려서부터 키우시던 손자와 외손녀 슬피 울었습니다
손자는 이 귀퉁이 가 숨어서 울고
저 귀퉁이 가 숨어서 울었습니다
외손녀는 염할 때 도착해서
할머니의 얼굴을 뵈었습니다
한다는 소리가
“어제 올 걸! 손 한 번도 못 잡아 보겠네!”
하며 울었습니다
아마 어제 와도 영안실에 계실 텐데요
그러니까 지난 토요일에 외손서감과 온다는 걸
추한 꼴 안보이시려고 못 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염하는 날 눈 뜬 까닭은 무엇입니까?
다시 살아나신 겁니까?
상주 한 명만 염 실에 오라해서
다른 사람은 모두 옆 실에서
유리창으로 볼 수밖에 없더군요!
저와 손수 지으신 수의를 입으시고
입관하신 뒤에 십(+)자가 보로 덮었습니다
그렇게도 사고(死苦)를 겪으시더니
드디어 세상을 하직하셨습니다
체구는 조그만 하신데 질긴 명줄만 타셔서
고로롱팔십을 채우셨습니다
몇 년을 누어서 와창이 나서 가을부터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치료했어도
낫는 듯 또 커지고 다른 데 또 나고
얼마나 고통이 심하셨습니까?
막 쓰리고 아프다고는 하셨지만
앙상한 뼈에 가죽으로 덮인 몸속에
무슨 전기가 번쩍번쩍 와서 심줄이 땅겨
다리가 오그라지고 그때마다 소리 지르시며
사방을 푹푹 쑤시고 돌아다니면
한 쪽 다리 펴 달라 하시면 잡아당겨 들였지요
금방 놓았던 다리가 또 오그라집니다
오른쪽 한번 왼쪽 한번 번갈아 가며
쉴 새 없이 잡아당겨 드리고
옆으로 바꿔 누우실 때도
“가만히 한 손으로 볼기를 드는 듯
돌려 다른 한 쪽 볼기는 주사를 하도 맞아
멍울이 들어서 피하고
다리도 아무 데나 잡지 말고
복상 씨께만 붙잡고 잡아당겨서 돌리고”
“다리가 빠져도 상관없으니 막 잡아당겨라
빠지면 집어 내버리지 그나저나 아픈 다리
이 이이 그렇게!”
베개 밑으로 머리가 내려올 때까지
잡아당겨도 손 놓으면 금방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온 몸에 누구의 손이 닿을까봐
“이 근방 오지 마 손다면 큰일 나니까!”
하셔서 누가 어머니 몸에 손을 댈 수 없으니
아무리 깔끔하셔도 씻길 수 없었습니다
돌아가실 무렵 약간 신경이 둔해지셔서 손 댈 수 있어
돌아가시던 날은 새벽에 제가
어머니의 각질을 노송 버굿 벗기듯 벗기고
찐득이로 찍어냈습니다
“나 죽걸랑 제일 먼저 물 먹여라”
하셨는데 깜빡 잊고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유언이셨는데
“죽을 때는 똥 싸는 것이다”
하시며 수건도 깔고 천도 깔고 하셨는데
그런 일 없이 깨끗하게 가셨습니다
새벽에는 난데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벌떡 일어나 너를 꼭 잡고 안고 싶다”
하시기에
“저는 허리가 아파서 그렇게 못해드리고
날이 새면 애들 시켜서 해드릴께요”
오후에는 손자를 시켜 해 드리려고 뵈오니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이것도 실천을 못했으니 불효녀입니다
한쪽 궁둥이는 주사를 하도 많이 맞아 쏙 들어가고
한쪽 멍울 든 곳은 더 나왔습니다
이래서 앉을 수도 없으실 텐데
아마 가실 때가 되어 그런 말씀 하신 것 같습니다
추수도 대충 마치고 친정에서 살다시피 간호했지만
한번 왔다 다시 뵈면
“이렇게 아프긴 처음이다”
하직할 때마다 남는 귀에 것은
어머니의 고통 받으시는 신음 소리
차마 자식으로써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가실 무렵엔 정말 더 하셨습니다
양쪽 발이 통통 부어터질 것 같습니다
진통제를 하루에 두 번 세 번 놓아도
신음 소리는 더 클 때는
만일 제가 의사라면 안락사라도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어머니의 바라시는 것은 얼른 가시기를 바라셨습니다
숨을 거두신 뒤로는 불러도 대답도 없으시고
체온은 남아서 따뜻한데
차마 돌아가셨단 말하기도 뭣한데
안 할 수가 없어서 동생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금방 나갔던 동생이 들어왔습니다
한복을 입히고 수세를 걷고
홑이불을 덮어 드렸습니다
옷 입힐 때도 벌써 몸이 차집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는 길인데
그만한 고통을 겪으셨습니까?
임종 예배드리고 장례식장에 모실 때는
영정을 벽 중간에 걸어놓아
천당 가시는 길 같이 보였습니다
녹음기에서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와
찬송 소리가 그치지 않고 나서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드리는 것 같았습니다
선영으로 가시게 되면 고향 사람들 귀찮게 한다고
화장하라고 하셨지요
성령이 역사 하셔서 조용히 장례를 마쳤습니다
어머니께서 보시던 성경과 찬송, 제 구약은
발인 예배 드린다고 어서 오라며
저는 돈 가방과 짐을 챙기고 있는데
규 어미가 빼앗아 갔습니다
집에 와보니 이 층에 있어 큰애한테 물어보니
외숙모가 줬는데 깜빡 잊고 안 내놓고 왔답니다
그래서 책꽂이에 뒀습니다
2000. 2. 20 사망 (2000.3.11.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