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글

벌키던 날

채운산 2008. 2. 19. 21:22
 벌키던 날

벌써 오십년이 넘었는데 오학 년 때 벌킨 것도 즐거운 추억이라 생각나서 써보려 한다.

그날 밤이 음력 6월 12일 달이 서산으로 질 때까지 돌아다녔던 생각이 가끔씩 난다.

그날 일은 체육시험을 본다고 운동장에 모여 남자부터 출석을 부르니까 무사히 다 끝냈는데 여자들 차례가 돌아왔는데 시험은 달리기였는데 공부도 잘하고 선생님 귀여움을 받는 애가 배가 아파 못하겠다고 하니 그러라고 대답하셔서 안하는 것보고 그 다음 애들도 배 아프다는 애들이 점점 많더니 거의 다 꾀병을 부리니 화가 나신 것이다.

모두 무릎 꿇고 앉아있으라 하시고 남학생들은 보내셨다. 그리고 교무실로 들어가시더니 어둑어둑 땅거미 질 때 나오셔서 교실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우리 충화학교 운동장은 위에도 있고 아래에도 있는데 아래 운동장이 훨씬 더 크고 운동할 때는 으레 거기서 했다.

운동장에 모여서 시작할 때는 저쪽에다 벗어놓고 그쪽에 모였다가 자리 이동을 했는데 신을 신으려고 보니 내 신 한 짝이 없어졌는지 두 짝이 없어졌는지 자세한 생각은 안 나는데 새로 사서 신은 지 댓새 되는 남자 검정 고무신이다.

다른 애들 것은 모두 있는데 왜 하필이면 내 것이 없어졌는지 아까 사택에 사시는 선생님 아들 남매가 놀고 있었는데 그 애들이 어떻게 했나?

애들은 교실로 들어갔는데 나는 혹시 학교 건물 뒤에라도 있나하고 화장실근방에 돌아다녔더니 헌신 한 짝이 오줌통에 빠져 내 것인 줄 알고 그 옆에 막대기가 있어 건졌더니 뒤꿈치가

다 낡았다. 그런데 내 발에 맞을만하니 캄캄한데 돌아다니려면 그것이라도 신어야 덜 다칠 것 같아 그냥 신기로 했다.

학교에는 물도 없고 샘도 없어 씻을 수도 없다.

낮이라면 동네 샘에가 빈 도시락으로 허리를 다 구부려서 뜰 수 있지만 그런 여유의 시간이 없다. 그래서 신발장에 그냥 놓고 들어가 있는데 어떤 애들 둘은 울고 있었다. 그 애들은 나와 같은 가화리 살지만 주로 다니는 길은 서로 다른 길로 가야 하는데 현미 애들하고 가지만 그쪽으로 가는 애들 중에 젤 멀고 큰 산을 넘어 산길로 용골을 가야하니 무서운 생각이 들어 우는 것 같다. 나도 나와 같이 가는 애들 중에서 젤 멀고 혼자 가야한다.

학교 뒷산 넘어 턱골에 사는 애는 집에서 초롱불 켜 들고 와 데려가고, 그리 멀지 않은 지석리 사는 애들도 마중 나와서 한동네 사는 애들은 모두 따라갔다.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오시더니 나머지 학생들은 모두 선생님 댁으로 가자고 하셔서 죽 가는데  갔다.

달밤이라 아주 캄캄하지는 않았다. 거리가 1km쯤 떨어졌는지 가는데 사모님이 방아깨비같이 생기셨다고 하셨다. 산 밑에 추원골이라는 동네에 초가 ㄱ자 집이었다. 노모님도 계셨고 사모님께서 저녁을 지어주셔서 먹고 사랑방 두 칸을 내어주신 것 같다.

어떤 애들은 잠이 든 애들도 있고, 모두 누어서 뒹구는데 어쩌다 들으니 이하자를 찾으신다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어머니가 마중을 나오셨다. 그 옆에는 동네친구 둘이 따라왔다. 그 동안 선생님과 말씀을 하신 것 같다. 내가 잘 못해서 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학교생활은 집단생활이라 군 생활처럼 하나가 잘못해도 다 벌을 받을 수 있다고 하시면서 미운 파리 잡으려다 고운 파리 잡은 격이 됐다고 하시더라고 오시면서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그런 동네는 낮에도 한 번도 안 다니시던 길인데 어떻게 밤에 오셨는 지

어머니께서 오시리라고는 생각도 안했는데 내가 안 오니까

사립문 밖을 내다보시는데 옆집 행춘이와 웃집 옥순이가

저녁 먹고 새끼줄 넘기를 하고 있는데 내가 안 왔다고 하시면서 마중 좀 나가볼래? 하시니 애들이 따라 나섰는데 옥순이는 발에 맞는 나막신이 있어 이것을 잘 신고 다니는데 우리 동네에서 학교까지는 5km라고 하는데 거기까지 와서 또 선생님 댁까지 왔는데 발이나 안 아팠는지 지금 같으면 물어봤을 것이다.

먼저 동네의 같은 반 남학생에게 물어보시니 여자들 벌 받더라고 해서 다음 새태 동네의 길가 옆 마당에서 길쌈들을 하는데 그 집에 가서 물어보시니 그 애도 벌 받더라고 해서 시남리 정자 네 집까지 들어가서 물어보시니 안 왔다  하시니까 위 청등의 같은 반 네 집에가 알아보시니 안 왔다고 하셔서 이렇게 오신 것이 학교까지 오시게 된 것인데, 학교에 와 보니 교실마다 캄캄한데 교무실만 불이 켜져서 알아보시니 소사 혼자 있는데 다 선생님 댁으로 갔다 해서 찾아오신 것이다. 어머니께서 다른 애들도 갈려면 가자고 하시니 애들이 안 간다고 해서 나만 따라 나섰다.

옛날에는 호랑이 나온다고 무서워서 백 명이 풍장치고 넘었다던 백중재 아래올 때 위에서 할아버지께서 사람소리 나니까 “태숙이냐?”고 소리를 지르신다.

할아버지께서도 조금만 더 가면 오겠지 하시며 여기 까지 오신 것이다. 여럿이 오니 든든하고 아주 캄캄하지도 않아서 다행이었다.

고마운 친구들이 따라나서지 않았으면 그렇게 험하고 먼 길을 어머니 혼자 오셨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애들은 각자 들어가고 나도 들어가서 보니 아침에도 배가 아프시다고 부추죽을 잡수시던 아버지께서는 오늘 더 심해 오리나 되는 데서 한의 모셔다 침 맞고 약 다려 잡숫고 하셨다고 하신다. 할머니께서도 안 주무시고 기다리고 계셨다.

사랑방에 들어가 동창의 유리쪽으로 잿간 채를 보니 달이 다 지고 꼭대기 조금만 비치고 있었다. 어쨌든 우리 올 때까지 달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자리에 누었다.



며칠 뒤 희정이가 하는 말은 담임선생님이 저희 오빠하고 말씀하시는데 하자 어머니 참 똑똑하시더라고 하셨다고 했다.


 

2008. 2. 18